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/의견 (문단 편집) === [[한국사 영역]] === 2019학년도 수능보다도 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우 쉬웠다. * 1번: 이젠 한국사 초반 문제에서 빠질 수가 없는 미모 담당, 빗살무늬 토기다. * 2번: 밑줄 친 이 문서는 신라의 민정문서이다. 민정문서라는 것 자체를 모른다면 조금 풀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. 제시문의 5소경이라는 내용을 통해서 통일 신라임을 알 수 있고, 통일 신라에 해당하는 선지는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, 모르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. * 3번: 백제의 역사 절반 사이에 일어난 일이 뭔지 묻고 있는데, 오답들이 가리키는 시대가 하나같이 안드로메다기 때문에 정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. * 4번: 한국사를 세부적으로 공부해두지 않았다면 꽤나 헷갈렸을 문제다. 밑줄 친 제도가 전시과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며, 이를 몰라도 [[태정태세문단세]]를 떠올리면 [[묘호]] 순서가 경종에서 문종으로 넘어가는 왕조가 고려뿐이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었을 것이다.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었던 것은 정답 부분으로, 2군 6위가 고려 시대의 군사 제도라는 사실은 무척이나 생 소한 내용이고 한국사가 절대평가로 전환된 이후 잘 출제되지 않던 영역이라 당황했을 수도 있다.[* 해당문제는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자주 나오는 문제이기도 하다.] 1번 선지의 별기군은 조선 후기에 설립된 신식 군대로 혹시 별무반과 헷갈렸다면 주의하자. 이외의 오답으로 훈련 도감은 조선 시대에 설치되었으며 9서당 10정은 통일신라의 군사제도이다. * 5번: 흔히 문벌 귀족, 무신 정권과 더불어 고려 신하들의 삼대 세력으로 등장하는 권문세족에 대한 문제다. * 6번: 세조의 행적을 묻고 있는데, 정답이 6조 직계제라는 살짝 생소할 수 있는 정책이다. 1~3번 오답의 주인공은 너무나도 명확하니 패스하고, 호패법을 세조가 처음 실시한 게 아니라 부활시킨 것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느냐에 따라 정답이 갈릴 수 있었다. * 7번: 청나라가 등장하는 것부터 조선 후기 확정이고, 조선하면 상인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. 혹시나마 실수로 건원중보를 상평통보와 동일시해버리고 오답을 찍은 중생들이 없길 바란다. * 8번: 한국 최초의 철도 설치 120주년 기념 문제로, 한국사가 절대평가로 전환된 이후 잘 출제하지 않던 연표 문제가 부활하였다. 제시문의 최초의 철도가 설치되었다는 부분과, 제국주의 열강의 이권 침탈이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개화기 이후에 일어난 사건임을 알 수 있고, 따라서 강화도 조약 이후의 사건이므로 답을 무난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.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철도가 1899년에 설치 되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, 강화도 조약이 1876년, 국권 피탈이 1910년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답을 무난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. 참고로 위화도 회군은 1388년, 인조반정은 1623년, 태평양 전쟁은 1941년, 6.25 전쟁은 1950년이다. * 9번: 절대평가 한국사 사상 최초의 합답형 문항으로, 임진왜란을 구체적으로 묻는 문제였다. ㄴ 선지에 의병장으로 예를 든 인물들이 우리에게 친숙한 [[곽재우]]나 [[유정(조선)|유정]]이 아닌 고경명, 조헌이라는 점이 수준을 올렸다. 다만, 나머지 두 선지가 ㄷ. 병자호란과 ㄹ. 귀주대첩으로 너무 확실하게 갈렸기 때문에 답을 찾는데 지장은 없었을 것이다. * 10번: 다들 공명첩 같은 개념을 떠올려 맞추기보다는, 이미 본문에 신분과 관련된 내용이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어서 정답이 훤히 보일 수밖에 없었다. * 11번: 만에 하나 묘청을 모른다고 해도 문벌 귀족이라는 키워드로 맞출 수 있었다. 고려시대 관련 문제인데 선지에 [[새마을 운동]]이 있다. * 12번: 윤봉길과 엮인 단체가 하도 많다지만, 이봉창이라는 익숙한 인물이나 한인애국단을 몰라도 이 문제 역시 오답들이 산으로 가서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. * 13번: 대한매일신보의 주요 인물들은 어렴풋이 떠오르겠지만 정작 타 근대 언론들까지 섞인 사이에서 대한매일신보와 국채 보상 운동의 행적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문제로 분석되었다. * 14번: 이승만 대통령은 4.19 혁명의 규모가 커지자 이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왔다. * 15번: 1920년대의 문화 통치를 일컫고 있는데, 산미 증식 계획을 몰랐더라도 역시나 나머지 오답들이 저 멀리 제 갈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후반임에도 어렵지 않았다. 11번과 마찬가지로 무리수를 던진 선지가 있는데, 1920년대를 묻는 문제의 선지에 1988 서울 올림픽 개최가 있다. * 16번: 을사조약, 헤이그 특사, 고종의 강제 퇴위, 을사의병 순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헤이그 특사를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번에도 오답들은 따로 놀고 있다. * 17번: 물산장려운동의 '내 살림 내 것으로'라는 구호와 '토산품 애용'의 성격이 서로 유사하다는 것을 생각하여 정답을 찾을 수 있다. * 18번: 유관순 열사의 기록을 보여주며 3.1 운동의 영향을 찾으라고 한다. 오지선다의 답이 전부 근대로 넘어가면서 일어난 사건들이지만 이 중 3.1 운동으로 일어난 것은 임시 정부의 수립 뿐이다. * 19번: 이승만 정부 때 제정된 반민족 행위 처벌법 말고는 다 오래 전에 있었던 활동들이다. * 20번: 한국사에 남북 문제를 다룬 문서들이 하도 많아서 실수할 수도 있는데, 이건 제 6공화국까지 멀리 갈 것도 없이 박정희가 한 활동이다. 따라서 통일 원칙을 표방했음이 빈칸에 들어갈 수 있겠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